두 마리 토끼를 기르며..
"엄마, 제발..."
"그럼 네가 토끼들 밥을 챙겨준다고 약속해야 해."
"약속할게. 내가 꼭 토끼들 밥 챙겨줄 거야."
지난 몇 달 동안 딸아이는 내게 토끼를 키우게 해달라고 날 귀찮게 했다. 나도 집에서 토끼 기르는 걸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지난번에 기르던 토끼가 죽어 무덤을 만들어 준 이후에는 사실 다시 키울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가 더위도 한풀 꺾이고 장마도 끝이 나며, 아침저녁으로 공기도 제법 시원해지니 내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나 보다. 아이의 간절한 부탁을 들어줘야 할 때가 왔다고 나는 생각했다.
한여름을 지나며 왕성하게 자란 풀숲을 보며 토끼들의 밥이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더해지면서 토끼를 키우는 것도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미 우리가 맘만 먹으면 토끼를 주시겠다고 언제든 오라고 하신 동네 어르신도 계시니 토끼장만 준비하고 토끼를 데려오기만 하면 되었다.
"엄마는 우리 딸이 책임감 강한 사람이 되면 좋겠어."
"책임감이 뭐야?"
"아.... 음... 책임감은..."
딸아이는 한국어에서 책임감이란 단어가 조금 어려웠던 모양이다. 난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아이를 위한 답변을 내놓았다.
"책임감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끝까지 잘하는 거야."
"그래?"
"응, 예를 들면 네가 토끼를 길러도 되는데, 조건이 있어."
"뭐?"
"토끼를 데려오면 네가 토끼 밥을 꼭 챙겨주는 거야."
"내가 줄 거야. 꼭."
"처음에는 잘 주다가 나중에는 엄마가 그 일을 하게 되면 안 된다는 거야. 그게 책임감이야. 약속할 수 있어?"
"응, 약속할게."
반신반의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나는 딸아이에게 책임감을 부여해주며 토끼를 맡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주기로 했다. 물론 나도 모른척하지 않고 함께 곁에서 같이 돌보겠지만, 아이가 혼자 힘으로 한 생명을 책임지는 임무를 잘 감당할 수 있기를 바라며 기대를 갖고 지켜보기로 했다.
먼저 우리 둘은 토끼장을 함께 공동작업으로 만들어냈다. 딸아이와 뚝딱뚝딱 토끼장을 다 완성할 때까지 남편은 한 번도 나와보지 않았다.(우리가 도와달라고 부탁하지 않은 이유에서다.)
토끼집을 완성하고 나서 바로 동네 어르신 댁으로 달려갔다. 애초에 흰색 토끼 한 마리만 키우려고 했는데, 아이가 검은색에 흰색 무늬가 있는 아기 토끼를 보더니 예쁘다고 환호성을 질러댔다. 어르신은 어제 막 젖을 떼고 풀을 먹을 수 있다고 하시며 난 지 한 달된 아기 토끼까지 두 마리를 데리고 가라셨다. 나는 살짝 걱정스레 고민을 하고 있는 사이에 딸아이는 아기 토끼 이름까지 지어버리는 게 아닌가?
"엄마, 애기 토끼는 이름이 오레오야."
"어... 그래?"
"흰색은 토순이고.."
"그래, 좋아."
그렇게 두 마리 토끼는 우리 집의 새 식구가 되었다. 딸아이는 아침에 일어나면 토끼들이 잘 있는지 가서 살펴보고, 비가 오면 토끼 들어 비에 젖지 않을까 걱정하며, 바람이 세게 태풍처럼 불어오니 토끼집을 튼튼하게 보수하는 일도 나와 같이 책임지고 하고 있다. 토끼가 좋아하는 풀이 어떤 것인지 토끼 밥을 어떻게 줘야 하는지 이번에는 차분하게 잘 배우면서 두 마리의 토끼를 잘 돌보고 있어서 감사하다.
처음에는 우리 집 강아지 꽃순이가 새 식구 토순이와 오레오에게 관심과 호기심을 갖고 눈을 떼지 못하고 두 토끼들을 귀찮게 해서 걱정을 했는데, 이제는 토끼들도 꽃순이에게 적응이 되어서 서로 친해진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아직 장군이에게는 비밀이다.
'토순이와 오레오' 두 마리의 토끼를 잘 돌보며 딸아이의 책임감도 쑥쑥 높아지기를 기대하며, 엄마는 곁에서 딸아이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고 싶다.
